한현우 논설위원
한현우 논설위원

인감증명서를 떼러 주민센터에 갔더니 입구에 처음 보는 장비가 있었다. QR 코드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머뭇거리니 직원이 익숙한 말투로 안내했다. 스마트폰에서 무슨 앱을 열어 뭘 누르라고 하더니 ‘모두 동의합니다’에 체크하라고 했다. 무엇에 동의했는지도 모른 채 즉석 QR 코드가 만들어졌다.

무엇에 동의했나 궁금해 다시 그 앱을 열어봤다. 이름과 전화번호, QR 코드, QR 코드 생성 일시 등등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서울시에 제공된다는 내용이었다. 주민센터 문턱을 넘기 위해 꼼짝없이 개인 정보 일체를 털린 것에 비해 인감증명 떼려고 내미는 주민등록증은 무척 허술해 보였다.

늘 가던 동네 빵집에 식빵을 사러 갔더니 방명록을 작성하라고 했다. 식당 입구엔 QR 코드를 만들어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어떤 식당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신 분은 저희 집에서 식사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써붙였다.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그 비논리가 우습지만은 않았다. 지하철 역에 들어서면 “마스크는 우리 모두의…” 어쩌고 하는 안내 방송이 반복된다. 개찰구에 카드를 대면 “마스크를 착용하십시오”라고 기계가 명령한다. 인류 종말을 그린 SF 영화 같다. 역을 빠져나갈 때 기계는 아무 말이 없다. ‘이제부터 당신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무언의 석방(釋放)이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우리가 너무 쉽게 헌법적 권리를 정부에 넘겨줘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고 나 혼자 조심한다고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종이 생겨나는 바이러스는 어차피 종식(終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방역뿐 아니라 바이러스와 지속 가능하게 공생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경기도는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안 쓰면 300만원까지 벌금을 매긴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정책인가, 아니면 ‘코로나 전사’ 시늉을 내는 정치인의 수인가.

코로나 초기엔 같은 구(區)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지나치리 만큼 걱정스럽기도 했다. 공익을 위해 확진자 인적 사항과 동선이 공개되는 것은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를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왔고 이제 대통령의 입에서 “종교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도 제한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그런 말은 최후에 했어야 했다. 권력이 코로나를 통치 수단으로 삼는 것이 두렵고 불안한 것은 나만의 걱정인가.

국가 권력이 코로나를 이용해 국가주의를 강화하고 개인을 희생시킬 것이란 경고는 진작 학계에서 나왔다.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이후에도 생체학 신호를 포착하고 추적하는 감시 기록 체계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며 “현재 우리는 프라이버시라는 영역을 모두 없애는 막강한 감시 체제의 등장을 목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국가 명령 통제 체제에 시민들이 순치되면서 코로나가 끝난 뒤 새로운 독재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은 현 상황에 굉장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는 코로나에 걸리는 것도 싫고 확진자가 되어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도 피하고 싶지만, 누구와 언제 어디서 만나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감시당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싫다. 특히 위선적이고 파렴치한 이 정부를 믿기가 어려워 더 끔찍하다. ‘K방역’이라는 자화자찬은 ‘한국인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사람들’이란 권력의 자랑으로 들린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정녕 소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