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논설고문
강천석 논설고문

한국 대통령을 ‘보수 대통령’과 ‘진보 대통령’으로 나누는 분류는 정확한 분류법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출현하기 전까지 과거 대통령들은 내부 현실과 외부 환경에 대응해 보수와 진보 정책을 적절히 섞었던 ‘혼합(混合) 대통령’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개인의 정치 이념이나 당파(黨派) 이익에 얽매어 비현실적 정책에 집착했다면 오늘의 한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한국은 ‘대통령 운(運)이 있던 나라’였다.

‘행운에 속지 말라’는 말이 있다. 성공을 당연한 결과로 여기면 예상치 못한 불운(不運)을 만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급격한 경제성장의 부작용으로 빚어진 양극화 시대에 국민건강보험을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됐을까. 사회가 더 빨리 더 크게 폭발하고 말았을 것이다. 집값이 크게 들썩일 때마다 그린벨트 해제 방안부터 내놓는 현 정권은 그린벨트가 어느 시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도입했는지 생각이라도 해 보았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지지 세력의 비위를 맞추느라 반일(反日) 문화 쇄국(鎖國)을 고집했다면 방탄소년단(BTS)이 세계 안방에 스며들 수 있었을까. ‘기생충’이 국제 영화제에서 연속 영예를 거머쥔 것 역시 문화 개국(開國)의 세례를 받은 한국 영화가 경쟁력을 키웠기에 가능해진 것이다. 외환 위기 때 IMF가 제시한 처방전(處方箋)은 김 대통령의 지지 기반을 직접 타격(打擊)하는 신자유주의적 처방이었다. 나라가 숨이 넘어가기에 그 약도 삼켰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노무현 시대를 떠올려보면 된다. 지지 세력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FTA를 밀고 나가지 않았다면 한국 경제가 자국(自國) 산업 보호의 깃발을 세운 트럼프 시대의 한파(寒波)를 견뎌냈겠는가. 이라크 파병 결정엔 대통령 수족(手足)들이 더 요란하게 반기(反旗)를 들었다. 10년 전 일본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라는 어설픈 쇼를 벌이자 일본에 맨 먼저 밀려온 파도는 군사·외교 압박이 아니라 미국의 엔화(円貨) 강세 유도였다. 장기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 기업은 이 한 방으로 숨이 막혔다. 내일모레면 중국의 세 번째 항공모함이 제주 옆 바다에 뜰 것이다. 1930년대 세계 최다(最多) 항공모함 보유 국가였던 일본이 그걸 두 손 놓고 그냥 바라만 보겠는가. 그나마 제주 강정 해군기지라도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지 세력에게 노 대통령의 3대 치적(治績)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등장으로 보수와 진보 정책을 병용(竝用)하던 ‘혼합 대통령’ 시대는 막(幕)을 내렸다. 문 대통령은 새로운 등산로(登山路)를 개척한 대통령이 아니다. 대통령이 지금 자기 지지자들과 패거리를 지어 오르는 산은 우리가 지난 70년 세월 오르던 그 산이 아니다.

대통령은 선거 공약을 뒤집고 취임사의 멋진 구절들을 내다 버렸지만 완전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황당한 사태를 예고(豫告)했다.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라는 대목이다. 대통령은 예고대로 대북(對北)·동맹·경제·인권·노동·교육정책에서 심지어 국가유공자 보훈(報勳)정책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산성(山城)을 하늘 높이 쌓았다. 취임 후 단 한 번도 지지 세력의 양보를 설득하며 국가 진로를 개척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혼합 대통령’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은 한국의 ‘대통령 운(運)이 다했다’는 뜻이자 ‘나라의 맥(脈)이 끊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어느 시대나 성공한 국가 지도자는 ‘혼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혼합 리더십’의 핵심은 비판 세력 제거가 아니라 지지 세력을 먼저 설득하는 데 있다. 지지 세력 설득에 자신이 없으면 ‘혼합 대통령’은 꿈도 못 꾼다. 나라가 생사(生死)의 기로에서 헤맬 때 대통령이 정권의 이념·당파의 이익에 앞서 국가 보존과 국민 생명 보호를 우선할 것이라는 기대는 서해 바다 깊이 가라앉았다.

이 상황에서 야당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당 간판을 바꾸고 정강·정책을 수선하는 운동장 확장에 열심이다. ‘강남 좌파’가 현 정권의 위선(僞善)을 상징한다면 ‘강남 우파’는 현재 야당의 고립을 대표하는 단어다. 운동장 확장 없이는 정권을 되찾기 어렵다. 그러나 ‘4번 타자’ 없는 구단(球團)이 운동장 넓혀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가. 골 결정력을 가진 공격수가 없는 축구단은 승리할 수 없다. 대통령·서울·부산 시장 후보를 찾아야 한다. 희망은 절망의 끝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