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지금은 감사할 때입니다
_ 추수감사절에
김원호
추수가 끝난 들판은 텅 비고
쓸쓸한 바람만이 살고 있습니다.
그 찬란하던 햇빛은 쇠잔해지고
가지 끝에 달린 이파리도
이제 몇 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감사할 때입니다.
저 빈 들판에 떠도는 까마귀같이
피곤한 날갯짓을 하며
몇 년을 그렇게 헛되이 살아왔습니다.
모든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시대를 탓하고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감사할 때입니다.
화병에 꽂은 아름다운 들꽃을 보며
황금빛 열매를 맺게 하신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거친 마음으로는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아침 식탁의 작은 평화를 주시고
착한 눈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다가오는 겨울이
따사로운 겨울이 되도록 해 주십시오.
주님
지금은 모든 게 감사할 뿐입니다.
시집 <광화문에 내리는 눈은>(201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