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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명품시] 김광균 : 설야(雪夜)

설야(雪夜) ---<조선일보>(1938.1)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야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追憶)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서구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은 김광균을 일반적으로 모더니즘(modernism) 시인으로만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 <설야(雪夜)>는 회화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정적(主情的)인 정서가 중심인 낭만시가 분명하다.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 서글픈 옛 자취,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 차단한 의상 등의 비유적인 보조 관념으로 전이(轉移)시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눈 내리는 고요한 한밤중에 시적 자아는 망각했던 옛 추억에 잠긴다. 가슴 아팠던 옛 사랑을 그리워하며 시적 자아는 애수의 심경에 젖는다. 눈은 계속해서 내려 쌓이고 시적 자아의 슬픔도 추억과 함께 그 위에 서리게 된다. 섬세한 감각적 표현과 회화적 수법이 돋보이지만 이 시는 눈 내리는 밤에 시인이 개인적으로 느낀 서정을 노래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머언 곳머언은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을 나타내기 위한 시적 허용의 표현이다. 은 과거의 추억을 환기시켜 주는 매개체로, 시적 자아는 그리운 소식으로 과거에 대한 애수(哀愁)에 젖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는 아무 예감도 없이 을 통해 전혀 예기(豫期)치 않은 과거의 추억을 문득 접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는 밤이 점점 깊어 간다는 시간의 경과를 암시한다.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는 백색의 공허감을 바탕으로 시적 자아는 서글픈 추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는 눈을 보고 떠오르는 옛 추억에 대한 시적 자아의 심적 반응을 나타낸 표현이다. 김광균은 시적 자아의 내면 공간을 마음 허공에라는 표현으로 조형적으로 그리고 있다. 등불과 대조적인 이미지로, 어둠을 밝히면서 따뜻함의 의미를 내포한다.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는 자기 내면의 정서를 정화(淨化)하려는 의도이며, 시적 자아가 심적 방황에서 벗어 나고자 하는 의지이다.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을 통해 고독한 시적 자아가 눈 내리는 밤의 서정적 분위기에 감화된 모습을 알 수 있다. 머언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는 이 시의 시상(詩想)의 핵심을 이루는 구절로, 눈 내리는 정경을 청각화하여 낭만적 분위기를 나타내는 공감각적 심상에 해당한다. 짝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그리움과 그로 인한 시적 자아의 고독한 상황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은 눈의 이미지를 관능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동양적 은밀감(隱密感)을 잘 나타내었다. 희미한 눈발은 추억의 희미한 상태를 나타내고,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이기에는 눈은 과거의 추억을 환기시켜 주지만, 그 추억은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추회(追悔)란 지나간 잘못을 뉘우친다는 뜻이다.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에 대한 감성적 느낌을 억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는 눈을 통해 환기(喚起)된 추억은 현실화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차단한은 김광균이 만든 조어(造語), 차디찬, 찬란한의 의미이다.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로 눈은 냉정하기만 했던 여인의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으로, 즉 여인에 대한 시적 자아의 감정은 일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흰 눈은 시적 자아의 정화(淨化)된 슬픔을 나타내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는 눈이 계속해서 내린다는 동작의 진행을 나타내기 위해 반복법을 사용하고 있다.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는 시적 자아의 애틋하고 서글픈 그리움이 고독하게 내면화되어 있는 구절이다. 눈을 보고 내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눈을 서글픈 옛 자취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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