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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명품시] 박목월 : 가정

가정(家庭)---시집<청담(晴曇)>(1964)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 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향토색이 짙은 순수한 자연의 세계를 민요적 운율로 노래하던 제1기의 시 세계를 거쳐 박목월은 1950년대 이후 생활 속에 느끼는 소시민의 애환을 평이한 시어로 노래한 제2기의 생활시(生活詩)의 세계로 변모한다. 그 내용은 시인 자신의 체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자전적(自傳的)인 시 세계라 하겠다. <가정>은 박목월의 제2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가정이란 지상의 낙원이고 천국이다.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家長)의 임무는 너무나 힘든 것이다. 식구들을 통솔하고 험난한 사회로부터 가정을 지켜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자존심을 버리고 머리를 숙이기도 하고, 사회의 불의와 타협하거나 본의 아닌 거짓말도 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 직후 1950,60년대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 벌이도 시원치 않은 시인의 입장에선 다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가정>은 힘겨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가장(家長)의 고달픔과 가정에 대한 책임 의식, 그리고 식구들에 대한 연민의 심정을 진솔하게 토로한 시인 자신의 체험적인 시이다.

가정을 지상의 천국, 혹은 낙원이라고 한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을 통해 시적 화자는 아홉 식솔을 거느린 가정의 가장임을 알 수 있다.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에는 아니 ~에는이라는 동일한 통사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여 운율을 조성하고 있다. 현관을 통해 이 시는 시적 화자의 귀가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들깐은 영남 방언으로 부엌 가까이 주방 용품을 보관하는 곳간과 같은 공간을 말한다. 시인의 가정의 표현으로, 이 시가 박목월 개인의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구절은 신분과 직업이 다르고 빈부의 차이는 있어도 사람 사는 모습은 똑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가장으로서 아홉 식구를 거느리기가 힘들지만,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통해 가족의 오붓하고 정다운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신발의 크기로 어른과 아이들을 나타낸 것은 대유법(代喩法)의 표현이다. 십구 문 반은 막내의 육 문 삼의 신발 크기와 대비되어 가장으로서 식구들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강조한다. 십구 문 반의 시적 화자의 신발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를 힘겹게 걸어온 것이다. 따라서 눈과 얼음의 길은 시적 화자의 하루의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 행로인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귀가한 시적 화자는 현관에서 식구들의 신발들 옆에 자신의 피곤한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는다. 육 문 삼의 코가 납작한이란 제일 kr은 신발의 모습을 통해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둥이의 모습을 떠올린다. 귀염둥아 귀염둥아 / 우리 막내둥아3음보의 반복을 통해 운율을 나타낸다. 막내의 조그만 신발을 보는 순간, 하루종일 겪은 피곤도 사라지고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떠오른다. 그리고 따스한 애정 어린 기쁨으로 속으로 막내를 불러보는 것이다. 가장이란 밖에서 겪은 힘든 일이나 걱정을 가정에서 토로하지 않는 법이다. 그 괴로움을 혼자 떠안겠다는 것이 가장의 책임 의식이다. 따라서 시적 화자는 밖의 괴로움은 잠시 접어두고 가족들 앞에서 웃음을 보이고 싶은 것이다.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 여기는 / 지상은 현실에 대해 달관된 자세로 언급하고 있는 구절로, 천국이 아닌 지상(地上)은 영원히 고통과 추위 속에 어렵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만이 생활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인간의 생활이란 고통의 연속이란 것을 말한다. 아마도 이것은 시인의 종교적 의식 구조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는 시적 화자가 삶에 대한 힘겨움을 직접 토로하고 있는 구절로, 우리의 삶이 너무 가엾다고 스스로 불쌍하게 생각한다. 내 신발은 십구 문 반이라고 화자가 자기 신발의 크기를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 큰 신발 속에 아홉 식구의 생활과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 의식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아랫목에 모인 /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는 가족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을 나타낸다. 은유적 표현은 거짓 진술이고, 직유적 표현은 진실의 진술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강아지 같은 것들아는 앞의 구절을 정정하여 진실의 진술로 바꾼 것이다.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는 이 시의 중심 구절로, 현실 생활에 시달리는 시적 화자의 고달픈 심정을 핵심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내가 왔다 / 아버지가 왔다 /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는 가정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울고 싶은 가장(家長)의 심경이 넋두리에 빠지지 않고 팽팽한 시적 긴장감을 가지며 표현되었다. 점층적인 진행이 자아라는 존재의 상실에서 가정에서의 아버지로서의 권위 상실로 진행하고, 오직 많은 식솔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힘든 책무만이 무겁게 시적 화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괴로움으로 남게 된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가족을 통해 위로받고자 하는 나약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아니 지상에는 /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 존재한다는 가정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 있으나 힘에 부쳐 그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한탄과 자괴감(自愧感)을 나타내고 있다. 미소하는 / 내 얼굴을 보아라에서 현실 생활은 고달프지만 식구들 앞에서는 억지로라도 미소할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애환을 표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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