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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명품시] 서정주 : 추천사(鞦韆詞)--- 오늘은 단오

서정주 : 추천사(鞦韆詞)---시집<서정주 시선>(1955)
                              — 춘향의 말 1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밀 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밀 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고전의 현대화라는 관점에서 이 작품은 여러 새로운 방법과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서정주의 시 가운데 ‘ ㅡ 춘향의 말’이란 부제가 붙은 작품이 세 편 있다. <추천사(鞦韆詞)>, <다시 밝은 날에>, <춘향 유문(春香遺文))>이 바로 그것이다. 시 <다시 밝은 날에>와 <춘향 유문>은 고전 <춘향전>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 없이 시인의 상상력으로 창작한 것이지만, 시 <추천사(鞦韆詞)>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소설 <열녀 춘향 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의 일부 내용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두 작품에는 내용 전개상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으니 시 <추천사>에서 춘향이 그네를 뛰면서 ‘님’과 만날 수 없는 사랑의 괴로움을 노래하고 있는데 반해, <열녀 춘향 수절가>에서는 오월 단오날 춘향이 그네를 뛰다가 이 도령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시 <추천사>는 고전 소설과는 다른 주제를 노래하면서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시 <추천사>를 이해하는 데 <춘향전>의 스토리 전개를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춘향’의 괴로움과 인간적인 운명을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을 ‘절대주의적 관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시의 전체 구조는 그네를 뛰는 과정의 전개 방식을 따르고 있다. 처음엔 느리게 천천히 그네를 뛰다가, 높이 올라갈수록 그네 뛰는 속도가 빨라지고 격렬해지는 모습을 시의 전개 형태와 낭독 호흡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춘향의 내적 괴로움과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수단으로 그네가 사용되었지만, 그넷줄이 나무에 매어 있어 춘향이 하늘에 도달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한계를 나타낸다. 이것은 인간에게 놓여진 운명적 한계 의식과 현실에 대한 춘향의 좌절을 암시한다. 시 <추천사>는 고전을 바탕으로 하였으면서도 새롭게 변형·재창조하여 해석했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시 <추천사(鞦韆詞)>는 ‘춘향의 말’이란 부제가 붙은 시 가운데 첫 번째 작품으로 현실과 이상의 대립과 긴장의 의미구조와 간절한 호소와 갈망의 여성적 어조로 대화체로 서술하여 극적 구성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시는 춘향의 현실적 고뇌 초극과 초월적 세계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 주제로 절대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1연은 현실을 초극(超克)하고자 하는 의지를, 제2연은 현실에 대한 춘향의 고뇌와 미련을, 제3연은 초월적 세계에의 갈망을, 제4연은 인간의 운명적 한계 인식과 현실에 대한 자각을, 제5연은 소망 달성에의 의지를 노래하고 있는 구성으로 되었다.
참고로 이 시는 판소리 <열녀 춘향 수절가>의 ‘그네 뛰는 부분’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판소리 <열녀 춘향 수절가>의 ‘그네 뛰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 때 월매(月梅) 딸 춘향(春香)이도 또한 시서(詩書) 음률(音律)이 능통하니 천중절(天中節)을 모를소냐. 추천(鞦韆)을 하려 하고 향단이 앞세우고 내려올 제, 난초같이 고운 머리 두 귀를 눌러 곱게 땋아 금봉(金鳳)차를 정제(整齊)하고, 나군(羅裙)을 두른 허리 미앙(未央)의 가는 버들 힘이 없이 드리운 듯, 아름답고 고운 태도 아장거려 흐늘거려 가만가만 나올 적에, 장림(長林) 속으로 들어가니 녹음방초(綠陰芳草) 우거져 금잔디 좌르륵 깔린 곳에 황금 같은 꾀꼬리는 쌍거쌍래(雙去雙來) 날아들 제, 무성한 버들 백척장고(百尺長高) 높이 매고 추천을 하려 할 제, 수화류문(水禾榴紋) 초록 장옷 남방사(藍紡絲) 홑단치마 훨훨 벗어 걸어 두고, 자지(紫芝) 영초(英綃) 수당혜(繡唐鞋)를 썩썩 벗어 던져 두고, 백방사(白紡絲) 진솔 속곳 턱 밑에 훨씬 추고, 연숙마(軟熟麻) 추천 줄을 섬섬옥수(纖纖玉手) 넌짓 들어 양수에 갈라 잡고, 백릉 버선 두 발길로 섭적 올라 발 구를 제, 세류(細柳) 같은 고운 몸을 단정히 노니는데, 뒷단장 옥비녀 은죽절(銀竹節)과 앞치레 볼작시면 밀화장도(蜜花粧刀) 옥장도(玉粧刀)며 광원사(廣元絲) 겹저고리 제색고름에 태가 난다.
“향단아 밀어라.”
한 번 굴러 힘을 주며 두 번 굴러 힘을 주니 발 밑에 가는 티끌 바람 좇아 펄펄 앞뒤 점점 멀어가니 위에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흐늘흐늘 오고 갈 제 살펴보니 녹음 속에 홍상(紅裳) 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구만장천(九萬長天) 백운간(白雲間)에 번갯불이 쐬이는 듯 첨지재전홀언후(瞻之在前忽焉後)라.“ [ 어휘 풀이 ㅡ 천중절 : 단오. 금봉차 : 봉황을 아로새긴 금비녀. 나군 : 비단 치마. 미앙 : 중국 장안에 있는 궁 이름. 수화류문 : 벼 무늬, 석류 무늬로 된 비단. 남방사 : 푸른색 비단. 홑단치마 : 옷단을 한 겹으로 지은 치마. 자지 : 자줏빛. 영초 : 중국산 비단. 수당혜 : 수를 놓은 가죽신. 백방사 : 흰 명주. 연숙마 : 삼껍질로 엮어 만든 줄. 은죽절 : 가는 대나무처럼 마디를 넣어 만든 은비녀. 밀화장도 : 호박으로 장식한 장도칼. 제색고름 : 여러 색을 섞은 색동 고름. 첨지재전홀언후라 : 눈앞에 바라보니 갑자기 앞에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네. ]
“추천(鞦韆)”은 그네로, ‘그네’는 이 시에서 춘향의 내적 괴로움과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수단으로 사용된 소재이다. 이 시의 전개 방식은 그네가 점점 높이 올라가는 진행 방식을 따르고 있다. “향단아”는 이 시를 대화체로 이끌어 극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 설정한 인물이다. “머언 바다”는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세계로, ‘하늘’과 내포적 의미가 같다. 제1연은 짧은 구절이 4개 행 구분으로 처리하여 느린 박자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그네를 뛰기 시작할 때 그네의 느린 움직임을 나타내기 위한 시인의 의도라 하겠다. 제2연은 춘향을 괴롭히고 유혹하는 현실의 존재들을 들고 있다. 이들은 춘향에게 괴로운 존재들이지만 막상 떠난다고 할 때 춘향에게 갈등과 미련을 갖게 만드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오월 단오날 그네 뛸 때 춘향은 이 도령과 처음 만났다. “수양버들나무”는 그 그네를 매었던 나무로, 이 도령과 처음 만났던 그 날의 추억을 상기시켜 주는 사물이 된다. “베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데미”는 현재 춘향은 이 도령과 떨어져 독수공방(獨守空房)의 외로운 상태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자잘한 나비새끼”는 춘향을 괴롭히고 유혹하는 뭇 남자들을 뜻한다. 예로부터 여자를 ‘꽃’으로 비유할 때, 남자를 ‘나비’로 비유했다. “꾀꼬리”는 춘향을 꼬이는 달콤하고 영롱한 소리를 뜻한다.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인 ‘오월’과도 연관이 있다.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은 항해할 때 좌초와 충돌을 일으키는 장애물이 없다는 것이다. “산호도 ~ 저 하늘로”는 그네 뛸 때 지상에서 하늘을 향해 상승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네 뛰는 여인을 예로부터 선녀에 비유해 왔다. 따라서 “채색(彩色)한 구름”이란 표현에는 춘향의 심리 속에서 자신을 오색 구름을 타고 나는 선녀로 생각하고 있다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적 표현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이 울렁이는 가슴”은 이상향을 향한 욕망, 즉 이 도령을 그리워하며 만나고 싶은 욕망을 뜻한다. 제3연은 점층의 흐름으로 되어, 그네가 점점 높이 올라감에 따라 춘향의 심정이 상승하는 구조로 되었다. “서(西)으로 가는 달”은 불교의 극락 세계인 서방정토(西方淨土)로 가는 존재를 상징한다. 춘향에게 있어 ‘서방정토’는 이 도령과 만나 사랑을 성취하는 것이다.“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를 통해 춘향이 임을 만날 수 없는 현실의 한계와 좌절감을 뜻한다. “바람이 ~ 밀어 올려 다오”는 자아의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 보다 격정적이고 격렬한 행동을 나타내고 있는 몸부림의 표현이다. 마지막 구절인 “향단아”는 울먹이는 심정으로 토로하는 소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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