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ER

  • 총 회원수
    957 명
  • 금일 방문자
    59 명
  • 총 방문자
    1,209,129 명

蓮圃詩碑 '물네방아'




batch_DSC03188.JPG


한국민속촌 장터 끝자락,  홍예교 너머 물레방앗간 앞 맞은 편에 

연포(蓮圃) 이하윤(李河潤)선생의 시비(詩碑), '물네방아'가 가 세워저 있습니다.

민속촌 경내에 문학적 정취가 깊게 배어있는특별한 장소입니다.

詩碑앞을 지날때면 시비에 새겨진 선생의 대표작 시(詩), '물네방아'를 보며 읽으며

어쩐 연유로 선생의 시비가 이곳에 세워저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이하윤 선생은 1920-30년대 <시문학>동인으로  활동하며 한국 순수 서정시의 기틀을 마련하고,

외국의 詩를 번역해 국내에 소개해 온 영문학자이자 시인이셨고 서울대 교수이셨습니다.

더욱이 내가 이 분을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선생은 내 둘째형 대학친구의 아버지셨고

한 동네(서울대학교 뒷편 동숭동)에 사셨던 인연때문입니다.

6.25당시, 서울대학생이셨던 둘째형은 친구와 함께 학교에 나갔다가

북괴군에 붙들려 압록강 위화도까지 끌려가서 군사훈련울 받았다지요.

인민군에 편입되었다는데, 탈영해서 혼자 숨어 남하하다가 미군을 만나 포로로 투항했었답니다.

형은 포로석방때 돌아오고 형의 친구는 그후 소식을 모릅니다.

선생의 詩碑앞에 서면 그 옛날 나 여렀을때 아득한 생각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1974년, 선생의 서세(逝世)1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동료문인들과 기념사업회에 의해

이 시비가 이 곳 민속촌에 건립되었답니다.

시비전면에는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히던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선생의 힘 있는 글씨로

선생의 대표작 '물레방아'가 음각으로 새겨저 있고, 뒷면에는 시인의 문학적 업적과 약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생의 고향은 경기도 이천이지만, 그분의 시비가 이곳 용인의 민속촌 경내에 세워진 데는

'공간이 가진 상징성'과 '시의 정서'가 완벽하게 맞물렸기 때문이랍니다.

사라저가는 전통가옥과 풍물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이 곳이 이 詩가 가진 토속적이고 예스러운 정서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받쳐줄수있는 최적의 공간이었겠지요.

기념사업회는 단순히 비석만 덩그러니 세우는 것보다 詩의 소재인 물레방아가

힘차게 돌아가는 역동적읹 풍경속에 시비를 두고자 했던 거지요.

민속촌측과 협조를 통해 실제로 게곡물이 흐르고 물레방아가 사계절 돌아가는 방앗간 바로 앞 명당자리를

공급받아서 선생의 詩碑를 나란히 세우게 된 거랍니다.

"끝업시 도라가는 물네방아 박휘에 

한닙식 한닙식 이 내 추억을 걸면 나의 靑春은 나래를 펴고 

아득한 저 나라로 나라로 나러갑니다.

도라가는 물네방아 박휘소리는 녯 아모의 속삭임 가슴에 저저

아즉도 꺼지지 안흔 불길은 이 내 뼈속까지 태오렵니다.

흘러간 자욱마다 물거품은 일어도 한번 간 우리 靑春 다시 안 오리니 

도라라 물네방아야 도라라 날이 저물도록 도라라."

당시(1930년대)의 옛 마춤법 표현이 고스란히 살아있어, 특유의 예스럽고 애틋한 서정성이 더욱 깊게 닥아 옵니다.

그냥 스쳐가면 전통가옥가운데 하나로 보일 물레방앗간이지만, 그 곳에 담긴 뜻을 알고나면

쉼없이 돌아가는 방아바퀴 소리마저 세월을 노래하는 詩句처럼 아련하게 들니다.


batch_DSC03185.JPG


batch_DSC03189.JPG


batch_DSC03169.JPG


batch_DSC03168.JPG


batch_DSC03178.JPG





batch_DSC03177.JPG


batch_DSC03186.JPG

게시글이 어떠셨나요?



다른 이모티콘을 한번 더 클릭하시면 수정됩니다.
화살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