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화동 언덕에 서서
ㅡ 졸업 50주년에 부쳐
졸업한 지 50년 만에
다시 화동 언덕에 섰네.
부대끼고 깨지고 피 흘리며
모진 칼바람 속을 헤매기도 하고
먼 길을 빙 돌기도 하면서
그래도 용케 죽지 않고
이렇게 화동 언덕에 다시 모였네.
체육관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잔디밭이 깔린 채
군데군데 벤치가 자리잡은 낯선 운동장
알지 못하는 ‘종친부 건물’은 폐허처럼 정구장 자리에 서 있고
졸업 기념으로
영화 <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를 보던 강당은
음식 냄새로 찌들어 있네.
수영장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낯선 곳에서
우리는 처음 온 손님처럼
서투르게 흘끔흘끔 눈치를 보며
정독도서관 열람실을 고개를 빼고 훑어보네.
회화나무는 여전히 제 자리에 서서
우리를 보고 반갑다 아는 체하고
경복궁 너머 인왕산도 저녁 햇살 사이로
고개를 끄덕이네.
누가 ‘중등교육발상지’를
내팽개치듯 강남 구석에 처박아 두고
역사 오랜 우리 학교를 가지고 장난을 치나.
정독도서관을 차라리 강남으로 보내고
풍기는 먼지라도 향기로운
화동 언덕으로 다시 되돌아와야 하지 않겠나.
오십 년의 세월이 더 흘러
머리 허연 우리들이 모두 별이 될지라도
우리들은 여전히 화동 언덕에 서서
함성을 지르며 운동장에서 공을 찰 것이고
회화나무 그늘에서 땀을 들일 것이네.
그리고 인왕산으로 지는 저녁 햇살을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오래도록 바라볼 것이네.
2009. 4.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