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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색채로 익어가는 가을

풍요로운 색채로
익어가는 가을
계절을 품은 명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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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익어간다’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 녹색 나뭇잎이 주홍빛으로, 쌉쌀한 열매가 달콤한 과일로, 뜨거운 열정이 성숙한 내면으로 점차 익어간다. 그렇게 가을은 ‘풍요’라는 결실을 맺는다. 노랑과 빨강의 신묘한 색깔의 향연이 펼쳐진다.

천산만홍, 금빛 출렁이는 들판 등 그 풍요로운 색채를 모두 담아낼 그릇은 캔버스뿐일 터. 아주 작은 단풍을 모아 모자이크하듯 그린 그림에는 가을의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계절의 눈부신 장면을 수놓은 명작을 만나본다.
가을은 사랑의 계절
가을의 상징인 단풍은 그해 가을을 통째로 품고 있다. 책 사이에 고이 끼워둔 단풍을 발견하고 추억 여행에 빠져드는 것처럼 말이다. 뾰족뾰족 별 모양의 붉은 단풍, 귀여운 부채꼴의 노란 단풍, 타조의 깃털 같은 고동색 단풍…. 다채롭게 염색한 자연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조차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게 바꿔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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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스톤, ‘훔친 키스’
마커스 스톤Marcus Stone, 1840~1921의 작품 ‘훔친 키스’는 단풍나무 배경에 둘러싸인 두 인물을 보여준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이 벤치에 곤히 잠들어 있고, 그 뒤로 턱시도 차림의 남성이 서서히 그녀에게 다가가는 모습이다. 동화 <백설공주>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두 남녀가 입 맞추기 직전의 순간을 묘사하지만, 상호 교감보다 일방적인 구애의 현장에 더 가깝다.

영국 로열 아카데미 출신인 스톤은 전형적인 왕실 미술교육을 받은 역사화가였다. 사진처럼 명료한 윤곽선과 단단한 형상, 엄격한 구도가 특징이다. 비슷한 유파의 화가들은 현실을 관찰해 재현하기보다 주로 과거의 명작을 답습했는데, 이 그림 또한 이러한 전통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당시 화가들 사이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몰래 키스하는 도상이 유행했고, 이 이미지는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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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바우터스, ‘가을’
스톤의 작품이 고전주의의 전형을 따른다면, 릭 바우터스Rik Wouters, 1882~1916의 ‘가을’은 좀 더 과감하고 강렬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벨기에 출생의 바우터스는 회화·드로잉·조각을 모두 마스터한 다재다능한 예술가였지만, 이른 나이에 병을 얻어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바우터스의 예술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일상적 주제를 풍부한 색채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야수파를 대표하는 그의 작품에는 앙리 마티스, 폴 세잔 등 거장의 흔적이 강하게 묻어나기도 한다. 바우터스는 작품에 담긴 상징적 도상을 걷어내고 더 단순하며, 더 진정한 그림을 찾아 나섰다.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여성은 평생의 뮤즈이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였다. ‘가을’은 어느 가을날 창가에 앉은 아내를 그린 작품으로, 원경의 나무와 지붕부터 근경의 과일과 커튼 무늬까지 모두 붉은색 계열로 맞춰 통일감을 살렸다.

이 화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상은 무엇보다 좌측 하단에 앉아 있는 여성이다. 노란색 옷과 파란색 머플러를 매치한 복장이 배경과 어울리면서도 주인공으로서 그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마치 가을이 그의 아름다움을 시샘해 옷을 따라 입었다는 듯이. 아마도 바우터스에게 가을은 아내로부터 시작하는 눈부신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내면의 풍경이 화폭으로
우리는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에서 그 ‘현실’을 인식하기 어렵다. 수십 년간 살아오면서 몸이 이곳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현실이 아닌, 혹은 현실을 뛰어넘는 장면을 만났을 때 우리는 경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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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개울가에서, 가을’
마치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작품 ‘개울가에서, 가을’처럼 말이다. 후기인상파의 대표 작가 고갱은 생전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자연을 따라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유년 시절 방랑의 나날을 보낸 그는 늘 마음속에서 낙원을 동경해왔다. 어둡고 칙칙한 현실에서 벗어나 밝고 화려한 색채가 가득한 파라다이스를 말이다.

특히 ‘개울가에서, 가을’에는 색의 스펙트럼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그의 기술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이 그림은 작은 개울을 감싼 고요한 가을 숲을 묘사했지만, 나무의 단풍이 마치 캠프파이어의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는 듯하다. 고갱은 단풍의 노랑· 주황· 빨강을 주변 하늘, 개울의 푸른색과 나란히 배치하면서 조화로운 균형감을 자아냈다. 대담하고 표현주의적인 붓질은 관람자가 실제 현실의 눈앞에서 이 장면을 마주하듯 생동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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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이니스, ‘가을날 햇살’
고갱의 ‘개울가에서, 가을’이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한 모닥불을 닮았다면, 조지 이니스George Inness, 1825~1894의 ‘가을날 햇살’은 그 불꽃 너머에 일렁이는 풍경 같다. ‘미국 풍경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니스는 19세기 웅대하고 야성적인 남북아메리카의 자연을 그린 허드슨강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후 신학을 공부하면서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성주의에 몰두했는데, 특히 빛과 그림자를 그리는데 탁월했다. 이니스의 예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표현법은 블러Blur 기법, 즉 뿌연 안개가 낀 듯 흐릿한 효과다.

이니스는 물리적 현실 세계와 영적인 정신의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복잡한 구성과 흐릿한 색채를 결합했다. ‘가을날 햇살’은 날씨가 맑은 어느 가을의 숲속을 그린 풍경화다. 뭉게구름이 펼쳐진 푸른 하늘과 높이 솟아오른 나무들이 평화롭고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말년의 그는 일몰을 멍하니 바라보던 중 그 빛을 잡으려다 발을 헛디뎌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가을날 햇살’을 그리며 그가 발견한 내면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진다.
가을의 절정 밀밭에서
가을은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 말하지 않던가. 물결치는 논밭과 탐스럽게 익어가는 과일은 더운 여름 동안 잃었던 입맛을 되살려준다. 하지만 인간을 위한 식량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 법. 그 먹음직스러운 음식 이면에는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 1년간 땀을 뻘뻘 흘린 농부의 정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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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브뤼헐, ‘농부들’
그럼 화가들의 그림에는 농부가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었을까? 먼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1525~1569은 플랑드르 풍경화와 풍속화로 유명한 판화가다. 그 이전까지는 종교화가 주류였다면, 브뤼헐 세대를 기점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풍속화가 유행했다. 브뤼헐의 대표작인 ‘농부들’은 가을철 농작물 수확에 열중하는 농부를 재현한 그림이다.

한 은행가이자 수집가가 1년간 다양한 계절의 변화를 묘사하는 작품을 의뢰해 제작했다. 브뤼헐은 특히 위에서 아래를 조감하는 시점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 작품 또한 먼 곳에서 바라본 농부의 모습을 담았다. 화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나무 아래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인물들이다. 브뤼헐은 모든 농부가 노동에 집중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대신 식사하며 휴식을 취하는 순간도 사실적으로 포착했는데, 이는 음식의 생산과 소비를 모두 포괄하려는 의도였다. 이 작품을 소장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이 그림이 “최초의 현대 풍경”이라며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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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뷔르낭, ‘이삭 줍는 사람들’
브뤼헐이 농촌 풍경을 달력 삽화처럼 표현했다면, 외젠 뷔르낭Eugène Burnand, 1850~1921의 ‘이삭 줍는 사람들’에는 보다 숭고한 감각이 담겨 있다. 그림은 초원이 드넓게 펼쳐지는 배경, 건초 더미가 잔뜩 쌓인 마차를 끌고 마을로 돌아가는 농부, 남은 곡식을 챙기는 두 여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위스 출신의 뷔르낭은 원래 건축가로서 교육을 받았지만, 그림에 더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가의 길로 선회했다.

그는 주로 사실주의에 기반한 시골 풍경을 그렸는데, 독실한 종교인으로서 그의 그림에는 영적 분위기가 흐르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은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심화되어 오늘날 그는 심오한 초상화가를 그린 거장으로 칭송받고 있다. 황금빛 밀밭 저 멀리 서서히 드리우는 석양은 이 풍요로운 가을도 결국 끝나 겨울이 올 거라는 자연의 순환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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