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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신재효선생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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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앞 광장 한 켠에 '고창 신재호고택'이라는 명패가 세워저 있어 들어섰습니다.

마루바닥 한켠에 명판이 놓여저있었습니다.

"한국의 세익스피어 동리 신재효(桐里 申在孝)" 라는 제목이 명판이었습니다.

'광대소리를 위해 만장의 기염과 소담한 자료, 이론적 유산을 남겨놓은 이가 바로 신재효이며.

이제 그의 생전의 업적으로 인하여 판소리의 성자가 되었다.

그는 서민 판소리 문학의 이론가요,연출가이며, 광대의 지휘자로서, 광대들 뒤에서

그 사설을 정리하여준 숨은 공로자로 해박한 지식과 절묘한 기법으로

판소리 사설(타령)의 창작과 집대성으로 필생의 대업을 이루었다.....(중략)....

그래서, 가람 이병기같은 학자는 신재효가 이룩한 판소리의 업적을 '문학사상의 획기적인 사업'으로

우리 민족성을 발휘하여 국가문학을 크게 이루어준 우리의 큰 은인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판소리의 아버지',  '한국의 세익스피어'라 칭해지는 동리 신재효선생의 고택이었군요.

원래 이집은 동리정사라 불리우던 대저택이었답니다.

13,000평방m 대지위에 안채와 14칸 줄행랑채 등 많은 부속건물로 이루어저 있었다고 했습니다.

마당으로는 수로가 흘렀고 거대한 석가산이 있어 운치있는 집이었으나 아쉽게도 지금은 사랑채만 남아있다고요.

신재효(1812-1884)선생은, <춘향가><심청가><박타령><토끼타령><적벽가>등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리하신 분이지요.

이전까지 일정한 체계나 순서없이 불리우던 광대소리들을 모아 사설의 체계를 잡아 개작하고

통일된 판소리문학의 기틀을 이룬 이론가이며 연출가셨습니다.

향리라는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천대받던 판소리꾼꾼들을 교육하고 예술활동으로 후원하여

판소리를 국문학의 정수로 끌어 올리신 분입니다.

사랑채만 남아 아쉽기는 했어도 그 분의 체취가 상상돼던 고택을 찾아볼수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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