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성'은 거대한 돌과 성벽으로 위압감을 주는 여늬 성들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나지막한 산세(해발106m)를 따라 부드러운 흙길과 울창한 솔숲이 이어저,
성(城)이라기보다는 아늑한 비밀정원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부드러운 흙길아래에는 백제 사비시대(538-660년)의 마지막 보루였다는 치열한 역사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왕비와 궁녀들이 거니는 후원이었지만,
전쟁이 나면 도성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기지 역활을 하던 곳이지요.
산성의 이름인 부소(扶蘇)는 백제어로 '소나무'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름처럼 오랜 세월 이 땅을 지켜온 소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으며 걷다보니,
1,400여년전 백제의 어느 날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더군요.
부소산성 문을 열고 들어서서 삼충사(三忠祠)를 만났습니다.
백제의 마지막을 지키려 했던 세 명의 충신, 성충, 흥수,계백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지요.
성충은 의자왕에게 쓴 소리를 아끼지 않다가 감옥에 갇혀 굶어 죽어가면서도
'적들이 처들어 오면 육로는 탄현을 막고, 수로는 기벌포를 짐켜야한다'는 피토하는
상소문을 남긴 분이랍니다.
흥수 역시 유배지에서 같은 절규를 보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지요.
계백장군은 황산벌에서 5천명 결사대를 이끌고 5만명 신라대군에 맞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습니다.
지나간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삼충사의 세분 영정을 처다보다 보면서
'그때 왕이 이 분들의 목소리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쓸쓸한 가정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숲길의 막바지, 백마강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끝에 서면 낙화암을 만나게 됩니다.
사비성이 무너지던 날, 백제의 여인들이 백마강 거친 바위위에서 몸을 던젔다던 슬픈 기록이
전설처럼 굳어진 곳이지요.
낙화암에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강가로 내려서면 숨어있는 듯 자리잡은 작은 사찰, 고란사가 나타납니다.
그 유명한 고란약수를 한 모금 마십니다.
그리고 고란사에만 있다는 고란초를 찾느라 눈알을 굴려보았는데....
비록 백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젔지만, 고란사와 바위틈에서 솟는 약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찾아오는 이들의 목마름과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습니다.
삼충사에서 굳은 충절을 보고, 낙화암에서 나라잃은 이들의 슬픔을 느끼며 ,
고란사 약수로 목을 축인 뒤 내려다 본 백마강, 그 길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었고
찬란했던 문화의 꽃을 피우고도 역사속으로 쓸쓸히 퇴장해야했던
백제라는 나라의 짧고도 강렬했던 역사를 되돌아 본 의미 깊은 걸음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