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혼란 속, 무자격 교사 축출사건
민흥기
1953년 4월, 휴전회담이 막바지를 치닫고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경기중학교에 입학했다.
임시로 서울 덕수국민학교의 교실 몇개를 빌려 쓰는데 학년 초와 겹치다 보니 모든 것이
어수선했다. 쉬는 시간이면 선배들이 교대로 우리신입생 교실에 들어와서는 규율도 잡을겸,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심어줄겸 해서 호통도 쳐가며 “설교”라는 걸 하곤 했다.
수업중에도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나를 포함한 우리 신입생들은 서서히 경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당시 경기중. 고등학교는 부산 피란지와 서울로 나뉘어 있었는데 화동의 교사가 미군에게 징발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울 분교는 덕수초등학교의 교실 일부를 빌리고, 그 옆의 서울 중앙방송국(지금의 KBS) 소유의 창고 같은 건물을 교실로 대충 개조하여 쓰고 있었다.
그 당시 전쟁이 예상외로
장기화됨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UN 참전국들 내부적으로 확산되는 반전여론 등으로 인하여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다르게 UN군이 주도하는 휴전회담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휴전반대
궐기대회가 전국에 걸쳐 열리고 있었고 우리 학생들도 여러 차례 휴전반대 궐기대회와 시가행진에 참여했었다. 그러니까
학교 생활이라는 것이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수업하다 말고도 선배들이 와서 시가행진에 나가자면 우르르
몰려나가는 판국이었다.
시대상황이 이렇게 혼란스럽다보니
우리를 가르치던 교사들 중에는 자신의 이력사항을 위조하여 교사가 된 사람도 많았던 듯하다. 당시는 우리
정부의 행정 시스템도 전쟁상황하에서 무너져 있던 터라 민원인이 제출한 이력사항 확인도 어려웠다.
그날은 중국의 지리에 대해서 수업하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그 지리 선생님은 “중국의 지역구분”부터 칠판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화북지방”, “화중지방’ “화남지방” “변방”.... 나는 “화북지방” 등은 국민학교 때부터 들은 바가 있었으나 “변방”이라는 명칭이 생소했다. 글자로 보아 대충 짐작은했으나 확인하고 싶어서 손을 들고 일어나 “선생님, 변방이 어딥니까?”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지리 선생님은 칠판에 걸어놓은 커다란 중국 지도에 얼굴을 바짝 대고 이쪽저쪽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변방”이라 쓰인 것을 찾고있는 듯 했다.
그러나 지도에 “변방”이라 써있을 리가 있겠는가? 한참만에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린 선생님은
들릴듯 말듯 우물거리며 수긍이 안가는 답변을 하는둥 마는둥하고는 어색한 장면을 얼른 벗어나려고 재빨리 칠판 쪽으로 몸을 돌려 다시 판서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바로 그 순간 그 뒤에다 대고 내 뒤에 앉아있던 金鍾鳴군이”아쭈!”하고 비웃는 소리를 내뱉었는데 그 소리가 좀 커서 그선생님이 들어버렸다. 사실 그동안 학년 초의 한,두차례 수업을 통해 그
선생님의 실력은 우리 중학교 1학년생이 보기에도 의심스러웠던 터여서 선생님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는 거의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경멸하는 투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교사로서의
체통이 많이 손상되고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던 그 분이 얼굴이 벌겋게 되어 돌아서서는 나더러 일어나라고 하더니 “방금 뭐라고 했나?”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질문을 했고, 자기가 그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못하고
돌아서자마자 내가있던 쪽에서 “아쭈!” 소리가 나왔으니 내가
한 것으로 생각했던듯 했다. 내가 아무소리 안했다고 하니 그럼 누가 했느냐며 추궁했다. 그러나 “ㅇㅇㅇ”가 했다”고 고자질하기 싫어 계속 모른다고 했더니 나를 교무실로 붙잡고 가서 손상된 권위를 힘으로라도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한듯
양손으로 내 따귀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나를 때리는 소리와 그 선생님의 고함소리로 교무실이 시끄러워지자
교무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쏠렸다. 좀 지나니 어느 선생님이 가까이 와서 “이놈아 어서 잘못했습니다. 하고 빨리 수업 들어가!”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교무실의 살벌한 분위기를 벗어날 틈이 생겼다.
교무실
밖으로 나오니 다른 일로 교무실에 들렀다가 그 선생님으로부터 얻어맞던 나를 본 고등학교 선배가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그 선배는 “알았다, 우리 반에서도 수업이 엉망이었다.” 하며 헤어졌다. 다음
쉬는 시간에 복도로 나갔더니 그 고등학교 상급생을 비롯한 7,8명의 상급생들이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그 선생님을 에워싸고는 뭐라고
떠들면서 그 선생님이 한 발짝 뗄 때마다 발 앞에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하는 품새로 보아 교실에서부터
교무실까지 그렇게 하고 오는 것 같았다. 교사로서의 권위는 완전히 무너져내린 모습이었다.
다음날부터
그 그분은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내가 鍾鳴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도 나팔불고 다닌 적이 없으므로 鍾鳴이는 늙어 저세상으로 갈때까지 혹시라도 나에 대해 미안한
생각 갖지 않고 편안히 지내다 갔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