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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꽃에 검은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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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 산책길을 걷다가 상사화 군락을 만났습니다.

숲길 가장자리마다 상사화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잎도 없이 꽃대만 쑥 올라와 꽃술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지요.

사람들은 흔히 상사화를 '그리움의 꽃'이라 부릅니다.

꽃이 필때는 잎이 없고 잎이 무성할때는 꽃이 없으니 서로 만나지 못하는 운명때문일 겁니다.

한참동안 상사화만 바라보며 섯터를 눌렀습니다.

숲의 그늘과 상사화가 어울어진 모습이 아름다워 이 꽃만으로도 충분한 사진이 되어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커다란 검은 나비 한마리가 날아와 뷰파인더속으로 뛰어들듯 나타났습니다.

순간 시선이 상사화에서 나비로 옮겨젔습니다.

흔히 호랑나비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호랑나비는 따로 있고, 이 녀석은 '남방제비나비'라 부르는 종이지요.

검은 비단조각이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듯한 우아한 날개짓이었습니다.

그 녀석 검은 나비는 상사화곁을 맴돌았습니다.

꽃에 앉았다가 금세 날아오르고, 다른 꽃으로 옮겨 갑니다.

가만히 기다리면 올 것 같다가도 어느새 살아지고, 포기하려면 다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한번은 두 마리가 한번에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나는 상사화보다도 더 열심히 나비를 기다려 셧터를 눌러야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상사화와 나비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습니다.

상사화는 만나지못하는 그리움을 품은 꽃이고, 나비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여행자입니다.

상사화꽃위로 맴도는 검은 나비를 보고 있노라니, 자연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다시 그 날의 숲길을 떠올려 봅니다.

처음에는 상사화를 담으려 했지만, 돌아와 보니 사진속에는 상사화와 남방제비나비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꽃만 찍었다면 보지 못했을 장면이고, 나비만 쫓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풍경이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늦여름 숲길에서, 상사화와 검은 나비는 잠시 내게 작은 선물을 건네주었습니다.

자연은 늘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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