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숨은 영웅, 1세대 과학자들
![1979년 2월 22일 KIST를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가운데)에게 김재관 박사(왼쪽)가 중공업 육성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홍용식 교수 가족,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201/29/045b8cae-ee4c-49ef-8135-4e9f7ec19b39.jpg)
1979년 2월 22일 KIST를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가운데)에게 김재관 박사(왼쪽)가 중공업 육성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홍용식 교수 가족, 중앙포토]
포항제철의 설립자 박태준, 한국 최초의 고유 승용차 모델 포니를 만든 정세영(포니 정), 조선소를 세우기도 전에 영국에 500원짜리 지폐 속 거북선을 보여주고 차관을 빌려와 울산 미포만에서 유조선을 만든 정주영….
의류·가발 수출 등 경공업으로 근근이 먹고살던 한국이 어느 날 중화학공업 국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건 이들과 같은 산업화의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중공업 입국이 이들 불세출(不世出) 영웅의 힘만으로 가능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건,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에도 못 미치던 보릿고개 시절 유학을 떠났다가 ‘해외 유치과학자’ 신분으로 돌아온 과학기술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 은 그 시절 실질적인 ‘한국산업화의 설계자’ 역할을 했던 김재관(1933~2017) 박사의 비사(祕事)를 발굴한 책이다.
“과학자 통찰력, 한강의 기적 성취에 기여”
![홍용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별세 직전 미국 워싱턴 D.C.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홍용식 교수 가족,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201/29/5d7b869e-3ad5-420c-b2a1-40fed04737b4.jpg)
홍용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별세 직전 미국 워싱턴 D.C.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홍용식 교수 가족, 중앙포토]
책 속에는 1960~70년대 한국의 현실이 한 편의 영화처럼 담겨 있다.
‘1972년 어느 날 청와대 한켠에서 영화가 상영됐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상업영화도 해외 유명영화도 아니었다. 그날 청와대에서 흘러나온 영상은 바로 북한이 만든 것이었다. 북한의 공업화 현황을 컬러 필름으로 제작해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홍보영상이었다. 북한이 지은 최첨단 공장들의 모습이 소개되었고, 김일성이 그 공장들을 찾아가 시찰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자리는 그 자체로 국무회의였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부총리 및 각부 장관들이 참석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무거운 얼굴로 담배를 뻐끔뻐끔 피웠다. 공업을 비롯해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다 본 대통령의 표정은 침통했다.’(163쪽)
1970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42달러에 불과했다. 북한은 740달러로 남한의 3배를 넘는 시절이었다. 북한에는 일제가 버리고 떠난 수력발전소와 제철소·비료공장 등이 가동되고 있었다. 흥남비료공장은 아시아 최대 질소비료공장이었고, 압록강을 막은 수풍댐 역시 아시아 최대 규모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를 위한 인재와 돈이 필요했다. 앞서 1964년 12월 박 대통령은 고속도로 건설과 차관 도입을 위해 서독을 찾았다. 귀국길엔 뮌헨에 들러 유학생·교민 만찬에 참석했다. ‘대통령이 광부·간호사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그 자리다. 이 자리에서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한국 현대사를 바꾼 일화가 있었다. 1950년대 독일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뮌헨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금속재료 전문가 김재관 박사와 박 대통령의 만남이다. 김 박사는 당시 서독 철강회사 데마크를 거쳐 뮌헨공대 금속연구소 연구원으로 활약했다. 그는 “혹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해 주십시오”라고 물은 박 대통령에게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전달한다.
![항공기술연구원 부원장 시절 홍용식 교수. [사진 홍용식 교수 가족,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201/29/0930d90f-2b20-4b80-a400-49055bd25cc5.jpg)
항공기술연구원 부원장 시절 홍용식 교수. [사진 홍용식 교수 가족, 중앙포토]
“각하, 철강은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필수이고 기반입니다. 자금이 많이 들어 지금 당장은 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사업입니다. 혹시라도 국가 발전에 보탬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