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골'입니다.
지리산 자락이지요.
'피아골'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듯 붉은 단풍이 짙었습니다.
'피아골'은 1948년-1955년까지 이어진 지리산 빨치산들의 본거지였으며 이념갈등의 비극,전쟁의
잔혹상이 압축된 장소입니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 실패후 많은 남로당,좌익세력이 지리산으로 잠입해 피아골을 핵심거점으로
삼았으며 6.25한국동란시에는 맥아더장군 지휘하의 한,미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자
퇴로가 막힌 북한군패잔병들이 숨어들어 남부최대의 빨치산 세력을 형성했었지요.
집중된 토벌작전으로 이현상등 주요 빨치산지휘관들이 사살 또는 체포되고
소수 생존자들은 투항하거나 산속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피가 멈춥니다.
조정래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가 바로 이곳입니다.
'피아골순국위령비'가 세워저 있습니다..
지리산 구례 '연곡사 입구입니다.
피아골계곡이 시작되는 곳이지요.
기념비앞면에 기념비를 세운 내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곳 피아골은 민족의 수난과 시련의 시기에 인고의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곳이다.
정유재란때 강토를 침로하던 왜군에 맞서 수많은 승군과 백성들이 피가 내가 될 정도로
처절한 전투를 벌이어 순국하였으니 '피내골'이라고도 불렀다.
또한 구한말에는 일본제국의 한일합방에 맞서 수백명의 의병부대가 연곡사 에서
'不遠復'(광복이 멀지않았다)이라는 글자를태극기에 써서 드날리며 최후까지 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6.25전쟁기간중에는 이 지리산 일대에서 약 이만명이상이나 되는 군인과 민간인들이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며 죽어야했던 슬픈 역사가 있었다.
같은조국을 굼꾸었으나 서로 다른 길을 가야했던 민족의 운명은 아직 치유되지않고 분단의 상처로
남아있다
야속한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강산은 더욱 푸르기만한데, 조국을 위해 흘렸던 그 많은 피들은
붉은 잎들이 되었는가. 피아골의 단풍은 해마다 더욱 붉기만하다...(하략)"
빨치산들과 피터지는 토벌전투만 기억했는데 승군과 의병들의 투쟁사도 있었군요.
기념비앞에서 숙연했습니다.
'지리산피아골에서 조국을 위해 몸바치신 선열들의 피와눈물 그리고 숭고한 뜻을 우리후손들은
잊지않겠습니다.
2019년8월15일 백중날
김용한거사외 연곡사를 사랑하는 사람들 두손모음
南無阿彌陀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