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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쓴 글하나 올립니다.

미국인 가수 마리아가 부르는 한국의 트롯트 "천년바위"를 소개한 글입니다. 

이 노래 한번 들어보시기를 


https://letter2.snu.ac.kr/massmail/write/massmail.do?method=fileDownload&fileKey=3752DD4DC179C11C56520C2A3489A6A61764547111811


소식지의 네번째 글로 올라와 있습니다. 


글의 끝 주석의 링크를 클릭하면 유튜브의 노래를 들을 수있습니다 


링크가 안되는 분들을 위해 본문을 여기 올립니다. 


지혜의 샘

 

 

마리아의 천년바위

 

서우석 명예교수

음악대학 작곡과

 

 

요즈음 유튜브를 통해 미국인 트로트 가수 마리아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고 있다. 그가 부른 천년바위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트로트라는 말은 1970년 이전에 사용되었던 용어인 뽕짝의 폄하적 의미를 피하기 위한 용어로 등장했다. 뽕짝은 2박자의 단조 5음계의 대중가요를 칭하는 말이었다. 트로트(Trot)Foxtrot(폭스트롯)를 줄인 말로서, 191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2박자 계통의 빠른 춤곡을 칭하는 말이었다.

처음 뽕짝을 트로트라고 부를 때에는 어색했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1970년대 이전의 대중가요의 흐름을 타고 있는 노래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천년바위3박자의 노래다. 그런 점에서 트로트라고 부르기에는 거북한 점이 없지 않다. 2000년 이전의 여러 노래 중에는 트로트라는 이름이 적합하지 않은 노래가 한 둘이 아니다. 앞으로 트로트라는 용어는 다른 말로 고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K-팝에 대칭되는 한국의 대중가요를 칭한다는 뜻에서 “K-가요라고 부르는 것이 어떨까?

천년바위의 가사는 특이하다. 다르게 말하면 상당히 이념적이다. 이런 이념적 특성의 또 다른 노래로 이연이 생각난다.천년바위의 가사와 악보를 보자.

 

동녘저편에 먼동이 트면 철새처럼 떠나리라

세상 어딘가 마음줄 곳을 집시되어 찾으리라 .......... a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부질없는 욕심으로 살아야만 하나 ........... B

 

서산 저너머 해가 기울면 접으리라 날개를

내가 숨 쉬고 내가 있는 곳 기쁨으로 밝히리라 ............ a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부질없는 욕심으로 살아야만 하나 ............ B

 

이제는 아무것도 그리워말자 생각을 하지말자

세월이 오가는 길목에 서서 천년바위 되리라 ............. a

천년바위 되리라 천년바위 되리라



 

이 노래의 독특함을 살피기 위해 먼저, 음악 청취의 심리 기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음악의 청취는 기대했던 바의 출현과 좌절로 설명된다. 편안함과 불편함의 선택적 출현이다. 만족과 실망, 실망 후의 새로운 희망을 각오하는 심리적 각성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 심리적 기제는 현실에 대처하기 위한 인간의 지각적 반응의 기본적 작업일 것이다.

위에 예시한 가사 끝머리에 표시한 영어 알파벳은 멜로디의 반복을 나타낸다. 소문자는 가사가 바뀐 멜로디의 반복이고, 대문자는 가사와 멜로디 둘 다 반복되는 경우다. 다른 말로 후렴이다. 여기서 가사를 무시하고 멜로디만 생각한다면, 이 노래는 “a b a b a”라는 단순한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단순성은 노래의 구조를 쉽게 파악하게 함으로써 음악을 듣는 재미를 단순화한다.

이 노래는 이 단순성을 일상적이 아닌 가사로 보완한다. 멜로디의 부족한 역할을 가사가 도와주는 것이다. 노래를 다 듣고 난 다음 가사를 기억해 불러보면 가사가 잘 생각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노래의 다음 구절이 생각나지를 않는 것이다. 기대의 좌절이다. 멜로디에서의 좌절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가사의 이런 좌절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트로트 노래는 멜로디의 역할을 가사가 대신하지 않았다. “천년바위처럼 이어지는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 또 다른 노래로 청춘을 들 수 있다. 청춘의 가사를 살펴보자. 가사 끝의 알파벳은 가사 반복을 무시하고 멜로디의 반복만을 표시한 것이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a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 a

 

가고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 a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 a

 

나를 두고 간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 a

정둘곳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 .......... a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a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 a

 

청춘의 첫 줄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은 가사의 출현에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편하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 행인,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는 후속 단어의 출현이 조금 거북해진다. 그러나 2, “가고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이나 3, “나를 두고 간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이후에 이어지는 가사는 생각나지를 않아 노래를 멈추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가사의 예상외 출현은 노래가 표현하려고 하는 의미를 보강해 주는 역할도 한다. 단어의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미의 확인이기도 하다. “천년바위에서는 세상 어디에 마음 줄 곳이라던가 집시되어 찾으리라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해가 기울면, 접으리라 날개를그리고 내가 숨 쉬고 내가 있는 곳 기쁨으로 밝히리라도 예상하기 어려운 단어들의 출현이라고 하겠다. 이 의미들이 가리키는 이념의 세계가 노래의 끝머리에 자신의 정체성을 들어낸다. “이제는 아무것도 그리워 말자, 생각을 하지 말자가 이 노래가 전달하는 최종 메시지다.

그리워 말자의 경우, “말자가 아니고 하자의 긍정문이었으면 그리워를 큰 소리로 강하게 노래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워 말자가 부정문이기 때문에, “그리워는 크게 부르지 말고, 사라지듯 불러야 한다. 다른 창자와는 달리, 마리아는 그렇게 노래한다. 이는 그리워 말자의 체험이 그녀의 몸에 새겨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뒤이은 생각을 하지 말자까지 작은 목소리로 그 감동이 이어진다.

마리아(Maria Leise, 2000~ )는 한국으로 오기 전 미국 뉴저지 한인회 주최 노래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경력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우던 중 한국 K-팝에 매료되었고, 15세에는 한국무술 택견에 매료되어 강습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의 무술 올인(all-in)에서 우리는 15세 소녀의 자유로운 정신을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마리아의 이름이 처음 알려진 것은 Mnet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6”(2019)였다고 한다. 그 후 202012TV조선의 내일은 미스트롯2”에서 외국인 참가자 최초로 올하트를 받고 결승전에 진출해, 인지도를 높인다. 마리아는 인터뷰와 방송에서 혜은이의 감수광이 처음 배운 한국 노래 중 하나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2017년 뉴저지 한인회 노래 대회에 이 노래를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천년바위202012TV조선의 내일은 미스트롯2”에서 소개된 후, 2021년 이후 유튜브를 통해 알려짐으로서 유행을 타게 된다. 원곡의 가수인, 박정식은 1994년에 이 노래를 발표했고, 보현 스님은 이후 2007년에 취입 발표했다. 박정식이 이 노래를 부른 태도는 이념의 밖에서 이념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부르는 듯 보였고, 보현스님은 이념의 안에서 불렀으나 그 해석에 지적인 이해와 설득의 면을 보인다.

반면 마리아의 가창은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감성의 차원, 다르게 말해 이념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외국인인 그가 어떻게 이런 경지의 가창을 해낼 수 있을까 의아해진다. 이는 그녀가 한국어에 매료되어, 말의 뜻을 항상 깊이 느끼려고 노력한다는 인터뷰의 고백에서 엿 볼 수 있는 것 같다. 한국 가수의 경우, 한국어 발음과 표현에 대한 자신감, 어떻게 보면 오만함이라고 할 수있는, 일상적 안이함 때문에 의미를 깊이 천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한국어는 새로운 발음 세계이고 조심스러운 의미 세계일 것이다. 그녀는 그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어가 외국어이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가 이루어지고, 그녀의 한국어 발음이 더 감동적으로 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의미, 발음, 그리고 문장의 뜻을 함께 음미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마리아가 2020TV조선 경연에 이 노래를 들고 나온 것은 한국 사람들이 이 노래의 이념적 세계를 거침없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최초의 가창자인 박정식조차도 가사의 이념 밖에서, 즉 불교의 밖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느낄 수 있다. 당시 TV조선의 심사위원들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녀가 올하트를 받은 것은 한국어 발음의 정확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리아가 미국인이었으니 말이다.

한국의 종교적 분위기는 기독교적이다. 이 노래는 그런 점에서 K-가요의 범주 안에서 외롭게 서있는 노래로 보아야 한다. 해외의 MZ 세대들에게 이 노래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기다려 볼 일이다. 우리와는 다른 새로움을 향하는 그들의 이념적 세계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천년바위 마리아, 천년바위 박정식, 천년바위 보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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