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동 에피소드#9 (李淙이 구해다준 카메라)
이장(李淙)동문은 3학년4반에서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같이 진학해서 대학공부도 함께 했었구요.
미국유학을 떠났는데, 어느날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몹씨 애통했었습니다.
여러기억중에 장이가 일제카메라를 사다줘서 애용했던 기억이 우선 떠오릅니다.
나는 초등학교(창경국민학교)다닐때, 큰형과 둘째형이 롤라이카메라(롤라이플랙스?)로
사진을 찍고 암실을 만들어 현상하고 인화하는 걸 보고 자랐습니다.
6.25가 터지고, 큰형(당시 서울의대병원 레지던트)은 북으로 납치되어 지금껏 생사불명이시고
둘째형(당시 서울대 3학년)은 의용군으로 길거리에서 붙잡혀 끌려가셨다가
이승만대통령의 반공포로석방으로 풀려나셨지요.
형들의 추억으로 나도 사진이 좋아졌나 봅니다.
고2때 용돈을 모아 청계천4가 중고카메라샵에서 독일제 Voigtlander 카메라를 한대 구입했습니다.
내생애 첫번째 카메라였지요.
두번째 카메라를 이장동문이 구해다 줍니다.
일본에서 발매를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당시에는) 구할수없는 카메라가 있어서
장이에게 구입을 부탁했었지요.
일본 월간사진잡지 '아사히카메라'에서 본 올림푸스카메라였습니다.
방학동안에 어머니 박찬주여사와 함께 일본을 다녀온다고 했습니다.
남대문에가서 야메환전상을 통해 일본돈을 준비해서 운형궁에 들려 부탁을 했었지요.
장이가 사다준 카메라, 그때시점에서는 최신노출장비가 부착된 신형카메라여서 열심히 들고 다녔습니다.
오늘, 추억의 글을 이렇게 쓸줄 알았으면 열심히 보관했어야했는데,
오래동안 사용타가 집안조카애가 욕심을 내서 오래전에 넘겨주고 지금은 없네요.
지금도 가지고 있으면 다시 돌려달라고 조카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사를 여러번 다니다보니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는군요.
지금도 빈티지카메라샵에 가면 가끔 보이던데, 발견되는대로 한대 구입해다 놓아야겠습니다.